[엘쏜] 이해할 수 없는 것 [B]
명일방주 INSA 2023.05.29 05:28

BGM : https://youtu.be/Adr0mlrY4u0



※ 미즈키 카에룰라 아버 _월간소대 쏜즈 스포 주의
※ 적나라한 사망소재와 사망묘사 / 약고어 묘사 주의 ... 애초에 소재가 그거고
※ 개인 취향으로 시본이 아니라 중섭용어인 해사를 썼습니다
※ 언제나 다는 거지만 캐붕 주의...








그 날로부터, 오퍼레이터 쏜즈는 그 꿈에 이따금씩 시달렸다.



그의 꿈 속에 있는 엘리시움은 언제나처럼 깃발을 들고 있었다. 오른쪽 겨드랑이에 깃대를 낀 채, 발신기의 오리지늄 아츠가 반짝이는 깃발. 그의 깃발은 다른 뱅가드 기수들의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앙상한 천의 제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새까만 이베리아의 하늘 아래서 그 천은 어쩐지 더 말라버린 것처럼 보였다. 번쩍. 번쩍. 오리지늄 아츠의 합성옥이 붉고 희미한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건 공명을 뜻하는 푸른빛을 내지 않고 있었다. 아츠를 쓸 준비가 되었음에도, 그 컨디션이 충분함에도 엘리시움은 자신이 자랑하는 깃발의 아츠를 쓰지 않고 있었다.



왜지? 어째서지?

멀리, 수평선 너머 닿지 않는 곳에서 쏜즈는 그걸 바라본다. 꿈 속이었지만 어쩐지 머리는 명로하게 돌아갔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시간은 충분했다. 그의 어깨에 보이는 표피의 검은 오리지늄이 생기있게 반짝였다. 엘리시움. 아츠를 써라. 그러면 박사가 우릴 보낼거다. 신호를 보내라. 통신을 해라.

아직. 살아있잖아.



오래도록 쏜즈는 이유를 알아채지 못한다. 박사를 믿지 못하는 건가? 너의 팀장과 상사를 믿지 못하는건가? 이유가 뭐냐. 이베리아는 네 놈이 더 잘 안다는 그런 생각이냐? 웃기지마라. 그럴 리가 없음에도 쏜즈는 그럴 리 없는 변수까지 생각하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는 사이 엘리시움이 디딘 명흔이 천천히 그의 구두 밑창을 파고들고 녹이기 시작한다. 엘리시움의 미간에 고통스러운 낯빛이 깃든다. 아직도 그는 아츠를 쓰지 않는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메딕 오퍼레이터들이 늦게라도 와서 그의 육신을 로도스로 데리고 올 것이다. 구조받을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쏜즈가 손으로 어딘가를 쳤지만, 주변은 온통 물인지 수증기인지 모를 흐물흐물한 공기 뿐이었다. 공중에 손을 텀벙댈뿐인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었다. 언젠가 깃발에 쓰이는 천은 기름을 먹여 잘 해지지 않고 위엄있는 광택을 드러내게 만든다 들은 적이 있었다. 엘리시움의 깃대 끝에 달린 천은 이젠 그런 수식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울부짖는 바다가 내뱉는 한숨에 엘리시움의 깃발이 공중으로 한번 치솟는다.







한 순간 오름치다 자취를 감추는 깃발의 모습에

쏜즈는 마침내 무언갈 깨달았다.







아아. 그랬던가.

그의 아츠는 주변을 밝혔다. 마치 그의 성격과도 닮은 그의 아츠는 자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통신을 울리며 숨어있던 적들의 안개까지 해체시켰다. 저 넓은 안개 속, 새까만 바다 속, 흐린 수평선 너머로 이베리아의 해안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지금은 알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걸 지금 사용했다간, 엘리시움은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엘리시움은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걸 목격했다간 아츠를 사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깃발을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랑이,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쏜즈는 그리고 자신이 외면하던 것의 존재를 깨달았다. 자신은 그걸 무서워하고 있지 않았다. 얼마의 촉수가 나타나던,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를 깨닫던 - 쏜즈라는 개인도, 오퍼레이터 쏜즈라는 자도 딱히 그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가 완벽한 계산을 자랑하는 머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두려움에 뇌가 마비되어 언젠가 폭발범위를 예측하는 데 실패한 물감 폭탄마냥 예외를 머리에 박아두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는 ...







그가 무너지듯 자신의 하체를 기댔다. 그래봤자 더 빨리 녹아내릴 뿐인데, 자신에게 달라붙고있는 눈 앞의 해사가 그의 상체까지 침범할 여유를 줄 뿐인데. 하지만 그것조차도 그는 쏜즈의 계산을 넘어서 버틴 것이었다. 더 이상 엘리시움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바닷바람은 이제 가장자리의 박음질 뼈대밖에 남지 않은 깃발을 아직도 갉아먹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깃발이 아니었다. 동족이 되어줄 육체 그리고 자신들에게 합류하고 싶어하는 마음. 헛된 것을 먹어치우며 엘리시움에게 유예를 주던 자들은 입질할 것도 떨어지자 마침내 그의 살갖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엘리시움은 광석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적이 적었지만, 자신의 최후가 여느 광석병 환자들과 다를 바 없을 거란 걸 아마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의료부에서 듣는 그의 병세는 짜증날 정도로 더뎠다지만 관리를 소홀히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는 가끔 쏜즈에게 전혀 필요없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깃발을 자랑하거나 은근슬쩍 마음에 들지 않느냐는 말로 보여주곤 했다.



자신이 준비해놓은 죽음 외의 결말을 맞는 기분은 어떨까?

이제 더 이상 뒤틀린 계산을 하지 않는 머리를 내던진 채, 쏜즈는 제 눈을 더 이상 깜박이지 않았다.







수평선 너머, 이베리아와 바다 사이에서 경계를 느끼지 못하던 시선 안,

바위 위엔 푸른 명흔과 해사들만이 자리했다.

해가 비칠 리 없는 바다 위, 눈꺼풀 위로 아침햇살이 밝아오고 있었다.

*외전*
*논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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