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젤란] 아마도 끝을 내려고 했었다 [E]
명일방주 INSA 2023.05.29 05:30

BGM: https://youtu.be/iMwUGjUThbU


※ 명일방주 아스베스토스 X 마젤란 CP
※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탐험가 + AI 조합이 보고싶다... 느낌입니다
※ 마젤란이 AI임
※ 테라가 아닌 지구 문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 AU니깐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넣었어요 민감하시면 주의
※ 언제나 다는 거지만 캐붕 주의...
※ 후기포함 1만자 정도입니다 스압주의
※ 결제상자 아래는 후기겸 잡담입니다.









“삐삐, 언니, 오늘도 좋은 아침이야!”



경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기상 알람을 깨웠다. 전자기판 보호벽으로 덮인 구형 벽의 구석 - 구형이니, 모서리가 존재하느냐에 대해 약간의 의문점이 있겠다만 여러 물건이 어질러진 잡동사니의 가장 외진 곳이라 하자. - 을 덮은 담요가 뒤척거리다 젖혀졌다. 귀찮음이 깃든 사나운 눈깔을 뜬 채 일어선 숏컷의 여성이 꾸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중심을 잡았다. 최저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덥혀졌던 기내 안은 다시금 그가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온도로 돌아왔다. 언니, 따뜻하지?! 안 그러면 얼어 죽어! 하고 종알종알 말을 거는 스피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성은 담요를 의자에 앉아 두어번 팡팡 털었다. 아마 여기서 눈치빠른 자들은 눈치챘겠지만, 그건 단순한 담요가 아니었다. 군용 문양이 프린팅 된, 일종의 야전 담요 같은 걸 - 그 여성은 담요이자 원피스 같은 것으로 쓰고 있었다. 서툰 바느질로 달아놓은 허리 벨트를 조여 버클을 고정시키자, 어느 원시 문명의 키톤이란 전통의상같이, 제법 옷이라고 할 만한 꼴이 만들어졌다. 일과 시간에 풀어지지 않도록 두꺼운 패딩 겉옷을 그 위에 고정하듯 걸치자, 빰빠라빰. 하는 소리와 함께 여성의 목소리가 팡파레를 울렸다.



“아스베스토스 언니, 최단 시간 준비야! 역사적인 날에 겉맞은 기상이네!”

“시끄러, 입이 멈추지 않는 걸 보니 한가한가보네. 밤새 내가 시킨 계산은 끝냈어?”



물론이죠! 라고 말하며 목소리가 재잘거렸다. 언니, 바깥으로 나가면 빙원이 있겠지? 나도 보러갈 수 있을까? 온 세상이 하얗다는걸 한번 보고 싶어! 짹짹거리며 수다를 멈추지 않는 목소리에 잠시 아스베스토스는 꺼버릴까. 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이렇게 수다스럽지 않았는데, 그도 탐험가의 머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단 희망고문에는 이렇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스베스토스보다 확실히 시끄럽긴 했지만, 그건 목소리의 피치 따위가 시끄럽단 것이지 수다스럽다는 이야긴 아니었다. 욕설을 제외한 모든 걸 단답으로 끝내려 하는 자신에 비하면 그에게 프로그래밍 된 어투가 일반적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자들의 문장 빈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오늘따라 그는 너무 시끄러웠다.





마젤란은 아스베스토스가 자신을 기반으로 만든 인공지능이다.





그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이 망할 사방 공간에 갇힌 후 심심풀이 삼아서 자신을 기반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걸 낙으로 삼았다. 목소리는 너무 닮으면 소름끼친단 이유로 적당히 밝게 피치조절도 해줬고, 그 외에 딱히 걸어놓은 제약은 없었다. 처음에는 복제품이라고 여길 만 했지만 이 인공지능이 어련히 지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젤란은 인공지능이란 이름답게 스스로도 잘만 탐사를 하고 다녔다. 거기엔 탐험가의 핏줄이 연결된 - 아스베스토스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연결할 수 있는 통신과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온 며칠 후, 쉘터로 돌아온 이 인공지능은 그 후로 아스베스토스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자가 되었다. 그가 바깥에 있는 빙원이란 존재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한 것도 그 날부터 즈음이었다.



그 때부터, 아스베스토스는 그걸 마젤란이라 불렀다.

그가 사실 빙원을 탐사하던 탐험가의 이름은 아문센이었단 걸 깨닫는 건 마젤란이란 이름이 입에 붙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으음, 언니. 듣고 화내진 말아. “



그 말과 함께, 마젤란은 화면 위에 어젯밤의 로그 기록을 주르륵 띄워놓았다. 아. 몇 번씩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검은 것은 화면이고, 흰 것은 글씨다. 종이 위였다면 반대였을텐데, 이 망할 모니터 화면은 언제나 반대였다. 가끔 초록인 것이 글씨일 때도 빈번했기에 아스베스토스는 이 다채로운 화면에 익숙해져야 했다. 체온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적외선 카메라에 자신이 눈을 돌리는 게 전부 보일 테지만, 아스베스토스는 그냥 감아버렸다. 마젤란이 알아서 설명해주겠지. 기계장치는 자신도 잘 만졌지만, 애초에 거기서 태어난 마젤란에 비하면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신은 이런 복잡한 일을 하려고 짐을 정리해 떠나온 게 아니었다. 이런 혹을 만드려고 온 것도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마젤란이 음성 모듈이 지직거리자 [조금 후에 메모리가 안정되면 이야기하겠다!] 라는 메시지를 추가로 띄웠다. 아스베스토스는 눈을 한참 감고 있다가 왜 말을 안 해? 라는 말과 함께 실눈을 뜨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툴툴거렸다. 평소같았으면 엿이나 먹으라지. 같은 험한 말을 썼을 텐데, 어쩐지 들떠보이는 마젤란의 목소리에 그는 말할 욕도 한번 속으로 집어삼켰다. 욕을 아껴본 적은 없지만, 굳이 웃는 낯에 침을 뱉긴 싫으니깐.



“언니! 이제 괜찮아. 이야기할게!”

“사실 ... 아스베스토스 언니의 계획은 일단 오늘 조정방법을 알아내고, 내일 나가는 거였잖아?”

“그런데 의외로 보안이 풀기 쉬웠어! 그래서 하는 김에 어제 새벽동안 바깥과 통하는 카메라도 발견해 조사를 완료했다! 섭씨 25도, 날씨는 선선한 가을날씨에 강수량은 오래도록 없었습니다! 낙엽이 지고 있는 걸 목격! 눈이 오기 전, 지금이 바로 나갈 때입니다!”



빵! 하고 화면 위에 흑백의 폭죽이 터졌다. 마젤란이 와아- 하고 박수 치는 소리 프리셋을 재생했고, 아스베스토스의 팔뚝에 꽂혀있던 영양제 바늘이 벽의 전자단자로 튕겨나갔다. 영양제 방울이 닿은 금속 단자가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갔지만 알 바 아니었다. 언니, 그런데 언니가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준비를 다 끝내놨다고 당황하실까봐 조금 뜸을 들였어요. 괜찮을까요? 마젤란이 그렇게 말하자말자, 아스베스토스는 반은 어이없음, 반은 환희로 벽을 걷어찼다.



“당연하잖아!!! 빨리 내보내줘!!!”



네엡, 알겠습니다! 괜찮아서 다행이네! 하며 마젤란이 다시 전자회로 속으로 몸을 감췄다.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노이즈 소리를 내며 페이드아웃되고, 아스베스토스는 고요 속에 홀로 남았다. 하지만 그건 마젤란을 제작하기 전의, 기분 나쁠 정도로 - 백룸이라 할 만한 고요함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유적 안의 승강기를 발견하고 나서, 최상층을 누른 뒤 N초 후에 보일 경치를 기다리는 듯한 두근거리는 고요였다.



잠시 그의 머릿속에 지난 날이 지나쳐갔다. 아스베스토스는 탐험가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험가였다. 탐험가는 지성체들의 위대한 발전을 고무하기 위해 극지를 탐사하고 다니는 위업을 떨치는 자들이고, 자기는 그냥 배낭여행가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 라고 자신은 생각했지만, 아무튼 아스베스토스는 큰 분류로 아무렇게 따지자면 탐험가가 맞았다. 아무튼, 그가 이 곳으로 떠난 이유는 - 확실히 말해서, 이 땅의 지성체들이 전부 멸망할 것 같아서. 였다. 자신은 자신의 기행문을 잡지에 투고하고 출판해 팔아먹는 일종의 작가인데, 지성체가 점점 멸문해가기 시작하며 자신의 책을 사는 인구도 기행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때까지 절경이라 알려진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 - 자극을 찾고 있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반복된 희망만을 심어준단 이유로 잡지사는 아스베스토스의 이야기를 실어주지 않았다. 마침내 생계가 어지간히 어려울 지경에 이르고 나서, 그는 자신의 모든 짐을 싼 채 이 외진 유적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러다 부상을 입었고, 유적 지하에 있던 - 비도 피할 수 있어보여 괜찮아보이는 숙소를 찾고 나서 잠들었는데, 알고보니 영문모를 고대 기술로 뒤덮인 이 기계장치 대피소였단 사정이다.



웃기지도 않지. 고대 기술로 만들어진 기계장치 대피소라니.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 안은 꽤 아늑했다.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를 영양제도, 식수 공급도 원활했고, 계절이 바뀌었음에도 분명한 날짜인데 처음 들어왔을 때와 그 온도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평생 벗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냐? 그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여행가라고 했지만, 굳이 민가에서 식사를 대접받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껴서 식사를 먹지 않았다. 그 대신에 애벌레를 으깨거나 생채로 씹어먹거나 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류의 미식은 지뢰일 때도 있었지만 별미일 때도 많았다. 그런 류에서 그는 탐험가라고 할 만 했다. 굳이 자신을 실험체로 내던지는 것에서부터 탐험은 시작이라 하니깐. 그런 그에게 - 그저 팔목에 꽂는 것으로 연명할 수 있는 영양제 바늘은 처음 하루이틀만 편리했을 뿐이지, 그 후론 차라리 자기 손톱발톱과 꼬리에서 박피되는 허물을 뜯어먹는 게 별미일 정도였다. 그 끔찍한 지루함 때문에 어쩌다 만들어낸 것이 마젤란이었고, 프로그래밍에 전혀 조예가 없던 그가 애먼 머리를 싸매다 만들어낸 것 치고는 그에게 의외로 유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피조물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날이 당도했다.

아스베스토스는 다시 바깥에서 물을 마시고, 나뭇잎을 씹어먹고, 단백질을 이빨로 찢고 썰 수 있다.



“비상 사태 명령 강제 해제를 완료했다! 언니, 곧 내부 콕핏을 외부 통로와 연결되도록 조정할게! 어지러움과 충돌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 콕핏의 레일이 돌아가는 기계음이 아스베스토스를 굴렸다. 쳇바퀴에 들어간 다람쥐마냥 예상치 못하게 벽인지 바닥인지 모를 것에 우당탕 얼굴과 꼬리를 찧으며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불평이나 욕설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속으로 나왔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잖냐? 고통 끝에 낙이 온다고. 네다섯바퀴를 굴렀을 때 즈음, 별안간 아스베스토스의 발 끝이 쑥 꺼지며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인공이 아닌 빛이 콕핏 안에 화아 쏟아들어져왔다. 아스베스토스는 잠깐 자신의 볼을 꼬집을까 생각했다. 바깥으로 나가있는 자신의 발과 정강이다리. 햇빛을 받아 역광으로 빛나는 몸을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던 아스베스토스의 머리에 한 구전설화가 떠올랐다. 죽은 아내를 데리고 저승에서 나가려던 음유시인이 몸이 전부 지상으로 나갈 때까지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자신의 몸이 전부 나갔을 때 뒤를 돌아봤고, 몸의 반절밖에 해를 받지 못한 아내는 지하 세계에서 완전히 나오지 못하고 다시 저승으로 끌려갔다는 전설. 번뜩 뭔갈 떠올린 그가 입구를 손으로 잡고, 튕겨져나오듯 팔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 입구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 보다 많이 작았다. 모자가 팡 튕겨지며 콕핏 안으로 다시 떨어졌고, 머리카락 몇 올이 문짝 사이 기계장치에 끼여 뽑혔다. 찢어뽑힌 머리칼이 반은 제비꽃색, 반은 늪색으로 빛나다 햇빛의 섬광을 받으며 색이 바랬다.



잠시 얼얼한 앞머리의 일부 흔적을 제하고 시선을 갈무리하자, 아스베스토스는 바깥에 나와 있었다.



하. 찰나동안 자신에게 그런 얼빠진 소리를 허락했다. 자신이 기억하기에도 정글에 가까운 생태계였지만, 아스베스토스가 일어선 곳은 자신이 기억하던 바깥보다 더욱 더 푸릇해져있었다. 어딘가에서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고, 분명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은 쨍쨍했다. 높고 공활하게 보였어야 했을 하늘도 깊게 드리운 나뭇잎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거. 제대로 나갈 수 밖에 없겠네. 아스베스토스가 허리를 숙여 안으로 떨어진 자신의 캡 모자를 주워 썼다. 발 끝에 채이는 덩쿨들은 되도록이면 피하면서, 정 엉켰으면 대충 제 꼬리 끝의 불꽃으로 지져 태우는 방식으로 주변에 나갈 길을 채비했다. 이토록 시간이 많이 지났었나. 스스로 생각하던 그가 문득 자신이 출발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



“ ... 이미 전부 멸망했겠구만. “



대피소나 방주를 찾는 것도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데 갈 생각도 아니었다. 아스베스토스는 자신이 나온 안락한 감옥을 바라봤다. 여기에 그냥 계속 있을까? 아니, 바보가 아니라면 그냥 이 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야, 그게 제일 생존확률이 높잖아. 어차피 이 여행도 자신의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채비한 것이었다. 이 안엔 몇 년간 아스베스토스의 흔적이 전부 남아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바보가 아니라면 ...



“ 언니! 바깥은 어때?! “



그 생각을 째버리듯한 명료하고 신나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두들겼다. 마젤란이었다. 바깥에 나갈꺼지? 그러면 나도 데리고 가 줘! 빙원이 보고싶다고 했짆아! 마젤란이 신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아스베스토스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랬었나. 그랬었지. 모험에 대해서는 아무튼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자신이 여행가긴 했지만, 관광객은 아니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는 건 제 인생에서 바보로 취급되진 않는 일이었다. 뭐냐. 한동안 다리를 안 움직여서 정신이 나갔나. 바보인 건 나였구만. 자연은 내가 휴식하는 동안 쉼없이 자랐을테고,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던 절경의 모습이 변했을지도, 아니면 새로운 절경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한다는 짓이었지만, 이미 발을 디뎌본 빙원에 한번 발을 더 디딘다고 풍경이 닳진 않을 것이다. 아스베스토스는 대피소의 문짝을 잡았다. 아마도 여기에도 각종 센서나 통신 장치가 있을 것이다.



“마젤란. 여기로 와! 지금 당장 뜯어낼거야!”



응? 하고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린 것도 잠시, 금방 문짝에 달린 개폐 모듈에 딸린 사운드 모듈에서 마젤란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 여기에 있으면 돼? 그가 대답을 하기도 전, 아스베스토스가 자신의 양 팔과 꼬리로 잡고 문짝을 뜯어냈다. 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짝이 찢어지며 하나의 거대한 금속 기판이 되었다. 주변에서 파지직 스파크와 불똥이 튀었다. 그 반동에 그가 바닥에 우당탕 쓰러졌다. 당연하게도, 늘 있던 일이지만 주변에서 한 순간 웅 하는 이명이 울렸다. 문짝 하나 떼어내는 데 전력을 다한 아스베스토스는 제 얼굴 옆으로 문짝에서 나온 스파크 튀는 게 느껴졌다. 야, 누가 뜯었는지 몰라도 참 깔끔하게 뜯었다. 일어서기 전, 시원하게 문짝이 뜯긴 대피소를 바라봤다. 튀던 스파크는 금방 가라앉아 있었다. 문짝이 뜯겼지만 외부와 내부 콕핏이 나눠져 있으니 금방 고장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사이에 이제 침수나 누전이 일어나는 등 안전을 보장할 순 없겠지 ... 다른 사람이 어쩌면 이용할 수도 있던 거였는데, 자신이 어찌저찌 망쳐놨다. 원래 자기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유적을 훼손하는 사람이 아닌데. 뜯어낸 문짝의 필요없는 회선 따위를 꼬리로 뜯어내며 아스베스토스가 고개를 저었다. 전리품이라 생각하자, 전리품. 작은 소리로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묻는 마젤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 전혀 말귀를 못 알아먹을 정도의 출력이었다.



아, 소리가 생각보다 작네.

조금 있다가 사운드 출력 조정 좀 해야겠다 .





*





그러고보니 우리 어디 가? 문짝 안의 목소리가 그렇게 묻자 아스베스토스가 어이없단 듯 대답했다. 어디 가긴 어디 가. 네가 그렇게 말하던 빙원에 간다, 왜. 별로냐? 튕기는 듯한 목소리에 마젤란이 당황하며 초록색 LCD 모니터 위로 절레절레 머리를 젓는 이모티콘을 날렸다. 아뇨, 진짜 좋아! 언니가 정말로 갈 줄은 몰랐어! 꽤나 오도방정 떨던 꼬맹이 인공지능은 뭔가 요란스레 검색하는 소리를 상당히 오랜 시간 내다가 다시 돌아왔다. 있잖아, 극북 탐험에 필요한 리스트들을 찾아왔으니깐 나중에 한번 봐봐! 마젤란은 그러면서 화면 위에 아까처럼 이모티콘을 띄웠다. 펭귄 이모티콘. 어디 자기 마스코트로 삼기라도 한 거냐? 하여튼, 잠시라도 자길 닮았다고 생각한 내가 멍청한 놈이지.



극북으로 가려면 여기에서 한 달 가까이면 충분할 것이다.

한 달은 더 연명할 이유가 생겼군.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베스토스가 모자를 고쳐잡았다.

*외전*
*논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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