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일방주 이벤트들 스포와 날조주의 (엘쏜드시는분들은 아시겠면서도)
※ 끔찍하게 별 내용 없음 주의
※ 언제나 다는 거지만 캐붕 주의...
※ 결제상자 아래는 후기겸 잡담입니다
엘리시움은 새벽에 눈을 떴다.
로도스 아일랜드 기함의 오리지늄 엔진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동도 아직 트지 않은 어둠이었지만, 엘리시움은 잠들기 전에 본 기함의 목적지가 이베리아였음을 기억했다. 용문으로 가기 위해 위도를 낮췄다면, 아무래도 그 김에 거쳐지나가게 되겠지. 동이 밝으면 이베리아의 오퍼레이터들이 통행증을 찍고 분주하게 들어와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구하러 다니고, 그들이 다시 외근을 하러 떠나면 박사의 책상엔 새로운 보고서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박사가 두어명 정도 어시스턴트로 남아달라고 하고, 며칠 동안은 이베리아식 식사가 한 끼에 한번 나오겠지. 새벽 공기 중에 섞인 바다 내음으로 이베리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가 깨닫는다.
수평선 너머로, 대지가 아닌 무언가가 움찔거린다. 1픽셀씩 흔들리는 수평선이, 조금 후 바다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구만,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슴푸레한 빛이 방 안을 조금씩 침범한다. 아직까지는 창가에서 멈춰있어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붉은 깃 머리카락도 창문에 바싹 얼굴을 비춰야만 붉은 빛이 반사되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다.
옆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엘리시움이 고개를 돌리면 어깨까지 오는 세미롱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청년이 있다. 쏜즈다. 어젯 밤 같이 잠들었었지. 고르지 못하게 새액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도 잠결에 공기 중에 있는 바다 내음을 맡은 게 어쩌면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고 엘리시움이 생각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엘리시움이 그의 얼굴 옆 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숨소리에 따라 아주 조금씩 제 손가락 연골이 따라 줄었다, 늘어나는게 느껴진다.
영 편안치 못해 보이네.
동향이었지만, 엘리시움이 쏜즈와 말이 통하는 건 적었다. 자신은 어찌됐든 동향이라면 반가웠지만, 쏜즈는 그것만으론 영 미덥지 않아보였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걸 엘리시움에게 전부 집어넣고 싶어한다 해야하나. 다른 에기르 오퍼레이터들 - 이를테면 미즈키나 퓨어스트림에게 물어봤을 때, 에기르들은 어쩌면 다른 종족들보다 동족이나 공감을 중시할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답변밖에 듣지 못했다. 맞는 말이겠지. 자신은 자신과 같은 리베리 오퍼레이터들에게 그닥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지난 출장에서 죽마를 탄 두린이란 소릴 들었으면 말 다했지.
쏜즈가 말하는 에기르, 이베리아, 그리고 이베리아의 바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자신은 제법 얄밉긴 하지만, 활약할 땐 활약하기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자리잡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쏜즈의 앞에선 ... 그냥 밉탱이다. 응. 밉탱이지. 사고치고 나면 서로 탓 하고 나서 사이좋게 갑판에 매달리는 2인조.
쏜즈에게 도움이 된 적이 없었을까?
그럴리가! 하고 먼저 그의 긍정적인 자아가 고갤 내밀었다. 제 광석병의 진행상황도 억제시켜주는 고마운 녀석이었다. 내가 정말 에기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위디도 조르디도 도와줄 수 없었겠지. 그리고 그의 실험에 몸을 내던져준 적이 대체 얼마였지? 아무튼 내가 재미있어보여서 당장 하자! 라고 한 것도 있었지만 목숨을 걸었다면 건 거니깐. 내가 그에게 쓸모없진 않았을거야. 만약 도움 된 적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도움 될 일을 앞으로 머리굴려 생각해보면 되는 거 아닐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곤 스스로 고갤 끄덕인다. 그래서, 이 사색의 시작이 어디었더라. 엘리시움은 자신이 손을 대고 있던 쏜즈의 얼굴을 깨달았다. 손가락은 미끄러져 날카로운 턱선에서 조금 삐져나와 그의 볼살을 누르고 있었다. 말랑말랑.
- 그래, 이베리아가 가까워지니, 묘하게 그의 반응이 불안정해진 것.
고향을 좋아한다는 건 알아. 그는 행동으론 에기르스럽긴 했지만, 말로는 이베리아에 더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성이 선택한 건 이베리아였다. 하지만 - 이베리아는 그를 박해했다. 고향에서 쫓겨나듯 도망쳐왔다. - ...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는 이베리아에게 애증을 느끼되, 자신의 종족에는 본능적인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 그는 자신의 종족에도 일말의 증오가 없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지난 번 시에스타에서 바다가 보고싶다고 연차를 썼다가 기대한 게 아니었다며 볼멘소리를 내뱉는다거나, 그랬던 것 같으면서도 며칠 전엔 자긴 바다가 무서워서 로도스로 도망쳐온거라고 하질 않나.
‘ 진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니깐 ... ‘
이 긴 사색의 목적은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쏜즈에게 편안한 존재가 될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까. 별 도움이 안 될 것을 직감했음에도 상체를 일으킨 엘리시움은 먼저 창가에서 점점 부피를 불려가는 바다의 수평선을 없애려 블라인드를 친다. 창의 문도 좀 더 단계를 높여 바깥공기가 새어나오지 않게한다. 자동 환기 시스템도 같은 맥락으로 잠시 꺼놓는다 - 쏜즈가 사고를 치면 다시 켜야겠지만.-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하더라. 이베리아는 조금 추우니깐, 온도를 높여놓는다. 난방을 좀 더 높은 온도로 설정해놓고, 지난번 외근 때 가지고 온 이국적인 꽃들도 -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 꺼내놓는다.
이런다고 평소의 쏜즈의 기분을 높여주진 못하는 건 알고있다.
그렇지만, 만약 괜찮다면 꿈에서라도 이베리아도, 바다도 보지 않는다면 좋겠다.
너와 나를 잇는 연결고리, 그것 하나로 동작하면 일단 지금의 나는 만족하니깐.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떨어진 엘리시움은 쏜즈의 곁에 눕곤, 이불 속에서 그를 꽈악 껴안았다. 방금 전까진 겉으로 티가 나지 않던 렘수면 상태의 몸이 크게 움찔거리다,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느아라. 에리시우움.... 하고 잠시 잠꼬대했다. 조금 뒤, 쏜즈는 다시 잠에 든 건지 아니면 악몽으로 지친건지 툭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