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반과 모래가 섞인 지면이 신발 바닥골과 마찰하며 자글자글 긁힌다. 대략 50Hz까지 찌익거리는 소리가 발의 움직임이 느려질 때마다 센서를 찢었다. 이 방호복은 언제부터 그의 체외에 달라붙었었는지, 이젠 메모리를 뒤지는 것조차 낭비일 정도로 오래 전 일이라 탐색은 포기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분명 할 일이라는 게 있었다.
그 후의 공백이 너무 길었던 탓이겠지.
생명체조차도 자신의 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방식을 제 피조물에게 완벽히 구현해내지 못했다. 중요한 일은 중요하게 남기고, 필요없는 정보들과 흘러가는 감각들은 바로바로 태워 없애야 할 텐데. 시간과 함께 그가 해야 할 일도 그 동안의 공백과 함께 떠내려가 버렸다.
계산 모듈에 모래가 낀 이후로 그의 이름과도 같았던 일련번호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어졌다.
이젠 그 기록들도 풍화되기 시작한 지 몇 백주일은 되었다. 이제 그가 기억하는 자신의 모습은 스크린에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는 영상이 잠시 출력된 뒤 - 우주적 기준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는 짓을 그만두기로 한 판단 정도였다. 딱히 자신을 부를 사람도 없는 대지 위에서 굳이 자신의 일련번호를 기억하는 일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게 어쩌면 그의 판단이었다.
견딜만한 잔자갈바람이 다시 불어오며 누덕누덕한 방호복을 때리고 지나갔다. 가끔 날카로운 것들이 살짝 섬유를 찢어놓았지만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마도 그 생채기가 미미할테니 오늘 밤에 휴식을 청할 쉘터에서 문제점을 찾는 게 좋을텐데. 넓은 범위를 인식하고 분석까지 하는 데에, 이제 그의 두뇌는 노후화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낮이 찾아올 때까지 발견할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이상하게 걷어붙여진 왼쪽 다리 부위는 그런 식으로 훼손되어, 그가 이틀 내내 서툰 바느질로 더 이상 훼손이 일어나지 않게 고정해놓은 것이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수백 주일, 아니. 어쩌면 수천 주일 이내에 그의 왼다리 부위는 겨우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마모되다가, 결국 어느 날 마지막 걸음을 내딛고 부러져버릴 것이다. 그런 느낌으로 부서진 곳이 자신의 몸에서 한두군데는 아니었다. 손가락은 오히려 잘 부서질 것이라 예상해 지구를 떠나기 전 조물주들이 그에게 선물해준 것이 많았다. 주요 센서들도 매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다.
덕트 테이프는 구생명의 유용한 유산이었고, 이때까지 마지막 지성체 역시도 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왼다리의 풍화 속도는 그것으로 수리하더라도 연명치료보다도 못한 효과를 낼 것이었다. 몇 백억만 주일을 보내는 동안의 - 평소 같았으면 딱히 아랑곳 않고 자갈밭에 드러앉아 다리에 칭칭 감았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그러지 않는 이유가 그에게 있었다.
며칠 전, 그는 외우주의 지적 생명체들로부터 통신을 접수했다. 그들은 이제 곧 지구의 멸망이 다가올 것이고, 그에 따라 몇 달 전부터 태양계의 변화를 관측하고 있었다 말했다. 지구의 멸망은 그의 데이터 베이스에 없었다. 바깥 우주의 사람들은 좀 더 길게 설명을 해 주었다. 지구의 멸망은 우리 사이에선 익히 알려진 상식인데, 태양이 화성 부근까지 팽창할 것이고, 팽창한 태양이 지구까지 잡아삼키고 난 후 다시 쪼그라들어 백색 왜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태양계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 것이라고.
그 기간이 끝나면 이제 자신들은 유적지 관광 사업을 다시 재개하고, 하트 지표면의 명왕성과 물로 가득 찬 해왕성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를 계획을 하고 있었다 했지만 - 그 것까지 그가 알아듣기에는 중요도가 높지 않았다. 그들은 한바탕 자신이 딛고 있는 땅에 벌어질 일을 [우주쇼] 라고 칭하며 들뜬 목소리였고, 한참 뒤에서야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무튼 그러해서 지구를 관측하다가, 아직 남아있는 지성체가 있단 걸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통신을 보내봤는데, 정말로 아직 지성체가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기계 생명체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종족명이나 일련번호를 말해줄 수 있나요?"
있을 리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미래문명이란 참 편리하게도, 그들은 간단한 문답 몇 개로 그가 외계 기계종족의 천애고아 자식 따위가 아니라 행성 지구의 거주민이었던 구인류가 남긴 고대 유산 - 그는 이걸 듣고 고대라고 칭할 정도로 그게 옛날 일인지를 갸웃했다. - 임을 알아차리고, 최종적으로 그를 자신들의 문명에 들이고 싶어한단 의사를 밝혔다. 그림문자로 뒤덮힌 발랄한 메시지가 그의 통신 내역에 박혔다.
[ 물론 저희 컴퓨터에 갇혀 살라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사용중인 것보다 더 나은 육체도 준비해드릴게요!!! 분명 마음에 드실거에요 ... 저희 모임 회비가 빈하진 않거든요 ... 어떻게 올 지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인공지능을 나를 수 있을 정도의 대용량 전송 포트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요 ... 지구 쪽에 남은 자료를 가지고 가려고 여럿 군데 해킹했었거든요 (하트) ]
며칠 뒤, 그들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자신들의 외우주식 첨단 통신 시스템 - 그러나 구인류의 하드웨어 안에서 작동하는 그들 기준으로는 꽤나 후진 계열의 -을 근처의 대용량 전송 포트 쪽에 설치 완료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하루바삐 그 곳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그의 의식은 어딘지도 모를 외우주로 실어 날라진다.
다시 돌아오자.
요컨데 그는 지금, 나름 지구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정을 치르는 중이었다. 대략 사흘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아마 하루이틀 간격 후에 태양이 지구를 향해 팽창하기 시작할 것이다. 몇 천광년이 걸릴지 모르는 데이터 전송을 생각하면 꽤나 빠듯한 일이었다. 자신의 두뇌가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중에 이미 지구는 저 새빨간 태양이 집어삼켰을 거라 생각하니 무엇인가 그의 논리 회로에서 달각달각 부딪혔다. 이 후의 일도, 그 미래가 벌어질 중간에도 자신의 하드웨어 사양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꽤 엉성한 단계의 추상화 시스템이 과부하에 브레이크를 건다. 명시적으로 계산하는 게 불가능해 논리 오류를 일으킬 상황에서 예술로써 표현하게 만드는 명령어는 그와 같은 세대 휴머노이드들의 과부하를 막기 위한 추상화 시스템의 구현방식 중 가장 값싸게 쓰이는 방식이었다. 거리가 그래피티로 상당히 잘 뒤덮인단 단점은 있었지만, 그나마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의 인간형 피조물이 눈앞에서 터져나가는 고어틱한 장면을 매번 목격하는 것보단 낫단 걸 이전 세대 휴머노이드들을 통해 이미 사람들은 학습되어 있었다. 물론 그에게 이제 그 시절처럼 손에 스프레이나 물감이 들려있진 않았다. 그냥 발 밑에 있는 모래 중 좀 노랗다 싶었던 부분을 손으로 한줌 감싸쥔 뒤, 제자리를 잠시 빙글빙글 돌았을 뿐이었다. 모래가 바람에 날리면서, 그가 빙글 돈 자리에 커다란 원형이 자리했다. 그는 그 주변에 발자국을 통통 튀듯이 점프하며 남겼다.
거대한 건 태양. 발자국들은 차례대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발을 질질 끌며 다시 오늘의 목적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끝을 끈 자리에 스키드 마크가 패였다. 그리고 이건 저 행성들을 놔두고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고 있는 자신의 정신 데이터들. 어느 정도 발을 길게 끌며 걸었을 무렵, 추상화 시스템의 연산이 끝났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 우주 속을 날아가는 자기 정신이 있는데 지구가 사라졌다는 미래의 필연적 사실은 [ 복사될 파일의 원본 주소를 찾을 수 없습니다 ] 라는 오류 메시지를 더 이상 띄우지 않았다.
어느 새 그가 서 있던 위치가 태양의 반대편으로 자전하고 있었다. 이미 여기에서 보기에도 그것의 핵분열 반응은 눈에 띄게 불안정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전 구인류가 밤이라고 부르던 암흑의 시간은 이젠 완벽히 까맣지 않았다. 예전 인류가 가장 번성했을 무렵 - 인간성의 존재를 토론하던 시절 빛 공해가 가득하던 불그스레한 밤하늘이었다. 멸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외피로 와닿는 자연현상이었다.
밤에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 이런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선 낮에도 비슷하지만, 밤이라면 더더욱 위치를 잡기 힘들어진다. 그는 휴머노이드로써 가벼운 길찾기 기능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거진 대륙횡단에 가까운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능력은 없었다.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면 매일 밤 쉬는 쉘터에 있는 시스템들을 체크해서 대륙간 이동용 항로 시스템이 있는 지 확인하고 자신에게 설치할 수 있었겠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에겐 큰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슬슬 휴식을 취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는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거진 3일을 걸어가야 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주변의 신호장치들에 통신을 곧추세웠다. 몇 발자국 반경 안에 지하 쉘터의 입구가 있었다. 곧 그는 발로 주변을 아무 곳이나 박박 문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 코에 손잡이 하나가 덜컥 걸리는 신호가 왔다. 굳이 낡은 시각센서가 주변을 분석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게 빠르단 걸 언제부턴가부터 그는 학습했다. 쉘터 안으로 모래와 흙먼지, 자갈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주변을 대충 정돈한 뒤, 제 발을 건드린 손잡이를 위로 잡아당겼다. 아직 위에 남아있던 자잘한 흙알갱이가 땅그르르 하며 기울어진 뚜껑 표면에서 떨어져내렸다.
본체를 지하 밑으로 밀어넣고 입구를 닫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가루들이 깔린 바닥이 드러났다. 이젠 어디서든 흔하게 보이는 광경이었다. 인간이라는 것의 시체는 사라진 지 오래고, 백골조차도 남지 않아 저절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만약 이 지구상에서 희귀하게 완전히 보존된 인골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꽤나 조심히 걸음을 옮겨도 뼛가루는 쉽게 풀풀 날리고 섞였다. 이 쉘터의 휴식처에는 부디 자다가 죽은 인간이 많이 없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엔 그런 곳에서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밤 새 날린 뼛가루들 때문에 카메라가 뿌옇게 흐려져 그날 내내 걸으면서 바람을 세척제 삼아 닦아낸다고 고생했었다. 그의 카메라 성능이 지금 시원치 않은 것의 7할은 그 사건 때문일 것이다. 복도에 있는 방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어느 곳이 취침실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잠시 그의 렌즈가 불안정하게 깜박거렸다. 개중 - 그가 알고리즘적으로 정한 순서로는 다섯 번째 문이었다. - 에 문이라고 인식할 수 없는 통로가 있었다. 문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이어진 무언가로 막혀있었다. 소재라던가 위치상으로 봐선 아마 실험실이겠지만, 실험실 중 개중에는 과학자들의 편리를 위해 취침실이나 휴식실을 실험실 안쪽과 이어지게 만드는 곳도 많았다. 만약 이 곳이 취침실과 이어지는 곳이라면 꽤 일이 귀찮아질텐데. 렌즈의 초점이 한 바퀴 그 벽 주변을 돌았다. 전선과 파이프가 이리저리 뒤얽힌 융합체라. 어쩌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 장갑 끝으로 겉표면을 훑으면서 자신의 악력상으로 가능한 얇은 전선 다발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쪽 돌출 덩어리다발 중 한 웅큼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손가락을 힘주어 당기자 제법 쉽게 뜯기기 시작했다. 순간 스파크가 주변으로 후두둑 튀고, 뜯겨진 부위 안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왔다.
아?
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 전선. 아직 동작하고 있다고? 전류가 흐르고 있다고? 이때껏 이런 류의 실험실들을 봐오긴 했지만 전부 동력을 상실한 뒤였기에 실제로 전류가 흐르는 실내 공간을 입성하며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부분 다 자기변덕으로 자가발전기를 찾아서 연결시켜야 작동했고, 처음부터 전기가 켜져있던 쉘터란 건 없었다. 오래 전에는 할 짓이 없었으니 일부러 그런 짓을 하면서 정보를 모으기도 했었지만, 머릿속에서 정보들이 다시 풍화될 시간이 지나자 의미없는 것처럼 느껴져 그만뒀다. 여러 가지 연상들이 회로 안에서 들끓으며 부딪혔다. 옛 취미에 대한 반가움, 이 장소에 대한 호기심, 어쩌면 외우주의 존재들이 좌표를 이곳으로 잘못 알고있었나, 하는 의심 등등이 혼란이라는 명목으로 움직였다. 얇은 전선을 전부 뜯어버리고 나자 주변의 조금 두꺼운 전선들이나 파이프들도 쉬이 끊어내고 찌그러트릴 수 있었다.
자신의 납작한 헤드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리자 그는 침입구의 눈높이에 맞춰 고개를 숙인 뒤 쉘터 입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집어넣었다. 용도는 모르겠다만, 그의 머리 뒤에는 날카로운 장식이 있어서 으레 이런 곳에 머리를 집어넣어 흔들면 장식이 주변을 찢어버리며 몸이 들어갈 공간 정도는 만들어 넓혀줬었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꽤나 깊이가 있는 장애물이었다. 안쪽에서 기어가다시피 하니, 어찌저찌 자신의 몸이 통과할 만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바로 그 안쪽 실험실 바닥에 손을 짚을 수 있게 되자, 그는 몸을 비틀어 빼면서 일어섰다.
실험실 바닥은 유리같이 반질반질한 타일이었다. 바깥과 차단된 탓이었을까? 유리는 전혀 낡은 티가 나지 않았고 방금 청소한 것처럼 반짝이며 매끄러웠다. 바닥의 반사로 인식되는 주변은 여타 실험실들처럼 조타실같은 기계들과 컴퓨터 모니터들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
수술실마냥 가운데에 높이조절이 가능한 침대 상판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기억이 어디에 있었지? 잠시 그는 머릿속을 세차게 더듬었다. 몇 억주가 지났는지 모른다. 마지막 인류가 이 별을 떠날 땐 자신은 다른 곳에 있었고 인지조차도 하지 못했다. 인류의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난 시간이 흘러서야 아무리 걸어도 고요하단 걸 깨닫고, 인류가 이 별을 완전히 떠났음을 실감했다. 그 이후론 주인 없어진 별에 식물과 새로운 포유류들이 번성하고, 지금처럼 될 때까지 지구는 열심히 자전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의 등에 배낭처럼 매달린 메모리가 이미 진작에 삭제됐었을 옛 기록들을 탐색하며 폭풍우같은 소리를 냈다. 팬이 고함치는 소리가 좁은 실험실 안을 가득 채웠고, 거기에 맞춰 - 그가 지금 기억을 탐색하기 시작한 이유인 - 인류의 모습을 띈 존재가 침대 위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바르륵, 바르르륵, 윙윙윙. 순식간에 기계적인 소리가 메아리친 실험실 가운데서 움직이는 존재는, 마치 자신이 깨운 것같은 묘한 기분을 만들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 우연의 일치 ? 라고 번역하는게 최선일듯
추상화회로가 되는 대로 뱉었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 지금은 누가 봐도 자신이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 누가 봐도 우연이 아니잖아 & 자신이 관련자였으니 말이다 하는 말로 하는편이 좋을듯
푸르스름한 모니터 빛에 가려 상대의 정확한 모습은 포착하기 어려웠다. 렌즈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시각신경처럼 푸른 끼를 빼기 시작했다. 주변이 좀 더 불그스레하고 축축한 빛으로 물들었다. 인간으로 치면 대충 견갑골까지 오는, 길다 라는 형용사를 아슬아슬하게 붙일 수 있을 정도의 머리카락. 키는 애초에 침대의 길이 자체가 자신보다 작아보였다. 고개를 아직 숙이고 있어 표정을 포착하긴 어려웠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은 수억 주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마치 어제 다듬은 것처럼 윤기나고 매끄러웠다. 전체적으로 그랬지만, 대충 그 부분에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인간이 저 정도의 머릿결을 유지하려 한다면 매일같이 빗질이라 불리는 관리 행위를 몇 천번은 해야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을 흉내낸 휴머노이드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인간이 그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의 상태는 ...
전체적으로.
불가능했다.
핏물이 빠진 듯한 연한 선지색의 머리카락이 목 뒤로 넘어갔다. 흉통에 딱 달라붙은건지 아니면 부품의 채색인지 구분 못할 민소매 상의. 허리 아래쪽으론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류에 대해서 요란하게 탐색하던 데이터 시스템은 곧 그것이 로봇을 사고팔 때 쓰는 비닐 완충제와 비슷한 소재이며, 상대가 그걸 하의로 삼고있음을 알아차렸다. 머리카락과 같은 연한 핏빛 눈동자가 나즈막히 발광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 ... 외계인 ? “
작동음 안에서 울려퍼지는 시스템 알림음이 아니었다면, 완벽히 인간이라 착각할 정도로 흡사한 음이 그의 목에 달린 공기 펌프 -추정- 에서 빠져나왔다. 제작 의도 및 연령미상. 10대에도, 30대에도 갖다붙일 수 있는 - 마치 대용량 게임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나 나올 법한 목소리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그의 머리 주변을 때리고 지나갔다. 강도가 강하진 않아서 외피에 타격피해나 변형을 줄 순 없을 정도였다. 빛나는 핏빛 눈동자가 여전히 그를 노려보다가, 불이 켜진 모니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갑자기 그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나가!!! 나가!!! 나가!!! 깊게 [감정] 이 실리고, 목 주변의 펌프 구조에서 실린더 압축공기 쉭쉭거리는 소리가 바쁘게 빠져나갔다. “ 내가 어떻게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 줄 알아?!! “ 나- 나는 - 하고 상대가 말을 더듬었다. 발성 모듈이 그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묘하게 그런 부분에서 [인간성]이라는 전재 하에 일부러 하자있게 만들려 노력한 - 그런 면이 보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 죽기만을 기다려왔단 말이야!!!
내- 내가 그냥 없어지도록 놔둬달란 말이야!!! “
마치 뒷통수라도 맞은 듯, 두뇌 주변에서 데이터 읽는 소리가 심하게 들리던 상대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그 말을 누구에게 말하기만을 기다려왔단 듯 그걸 기점으로 핏빛 렌즈에서 등등하던 살기가 빠져나가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 조차 귀찮다는 듯 자신이 침대삼아 있던 상판 위에 쏟아내 굴리곤 다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마치 그가 무엇이라 이야기 할 지 모르겠어서 추측이라도 하는 지, 상대의 안구 시스템이 조리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초점을 그에게 맞추질 못했다. 딱히 짧지도 않은 시간이 지나간 후, 그는 무언가 대답을 들을 결심을 한 듯 두 손을 꼭 말아쥐고, 정돈되고 단정한 목소리로 짐짓 비장하게 물었다.
“ 지구는 멸망했어? “
아직도 등 뒤에 짊어진 데이터들은 관련된 자료들을 더 찾아보려 바쁘게 팬을 돌리는 중이었다. 휴머노이드들은 인간들처럼 멀티태스킹이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디스크 조각 찾기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데이터를 많이 쌓을 순 없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옆에 그를 보조하는 인간이 있었다면, 그의 표정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을 것이다. [ 이것은 아하. 라고 하는 표정입니다. ] 라고. 그러나 그런 인간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 그는 정보성 무감각 60%, 부정적 30%, 중립적 10%라는 숫자상 수치로 추리해낼 수 밖에 없었다. 적대감이 조금 있지만, 아직까진 자신이 누군지 탐색하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당장 호의를 표하며 그에게 다가가기엔, 시스템 과부하를 생각하면 기다려야 하겠지만. 만약 이 행위로 상대가 적의를 가지게 된다면 - 곤란해진다. 반 바퀴의 자전이 끝나면 다시 밖으로 나가서 외우주 존재들이 보내준 좌표로 출발해야한다. 하루라도 지체되면 안 된다. 나중에 제대로 사과를 표시해야한다.
판단이 무섭게 그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정적 80%. 무언가 안 좋은 결론을 그의 마음 속으로 낸 모양이었다.
“ 아니. 아니야. 에셔로덴츠 사의 ES-178 모델. 이때까지 작동하고 있었다고? “
그리고 또 잠시,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까 전, 물건을 집어던지던 반응에서 전혀 추리해낼 수 없는 반응이었다.
“ 나에게 탑재된 데이터상에서 검색할 수 있는 옛 문명의 지성체. 그럼 외우주 문명에서 온 - 나를 구출하러 찾아온 역겨운 기계생명체는 아닌 모양이네! “
“ 아. 잠시만. 그러면 왜 지구가 멸망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 나는 그 대답에 어디 우주 고속도로를 만들겠다며 지구가 박살난 탓에 내가 있는 실험실이 우주 공간에 있는 줄 알았는데. “
상대는 완전히 긴장을 푼 채 상판에서 다리를 내렸다. 그에게 다가갈 모양이었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완전히 얼이 빠진 상태였다.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 된 자신의 모델명. 무슨 추상화 회로를 거쳤는 지 모를 비유. 잠시 뒤 데이터센터가 저것이 1차 근대 문명 시절에 나온 과학 공상 소설의 한 대목이라 말해주었다. 예술화를 거치는 게 아니라 이해 겸 인용화를 거친다고? 자신의 회로도 가끔 그렇게 동작하긴 했지만 아주 드물게 출력되는 오류와도 같은 일이었다. 단박에 그는 상대에게 달린 게 아주 값비싸거나, 내부 실험에서만 쓰이는 - 상용화되지 않은 추상화 회로임을 짐작했다. 아직 문명이 살아있었다면 이 자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는 어마무시했을테니, 잠이고 뭐고 혹시라도 오작동 했을 당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을 것이다. 청소의 필요성을 못 느끼던 척추 부품에서 모래가루가 후두둑 쏟아졌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낡고 지직거리는 얇은 소리가 규사 입자를 뱉어내며 작동했다.
문득 자신의 목소리가 이랬었단 걸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싶었다.
“...당신과 접촉할 수 있으니, 지구는 멸망했겠죠.”
나를 구하러 왔어? 싫어!! 나는 죽을거야!! 하고 첫도입부에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일 필요가있음
“ 그럼 생존자라고 해도 돼? “
“ ...별로 저를 뜻하기엔 너무 사전적인 단어 같은데. ”
“ 어차피 이 별에 살아있는 건 너랑 나 밖에 없지 않아? 그럼 상관없지. 지구 인류의 생존자들의 후손들은 이미 자기가 생존자의 후예라고 생각하지도 않을걸. 벌써 몇 억년 전인데. 아니. 몇 십억년인가? “
그럼 결정된거지? 생존자 - 존자 - 존자 씨 ? 데이터 정리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그렇게 대화를 끝맺곤 그는 생존자의 뒤편으로 걸어와 아직 윙윙거리고 있는 등판을 쳐다보았다.
“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 “
“ 응. 외우주로 네 의식 데이터를 나를 예정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생존자의 후예라고 생각하지도 않을텐데. “
“ 저는 ...그 ... 전시되러 가는 게 아니거든요 ... “
“ 전시가 아니면? “
솔직히 그 자신도 믿기진 않았다. 하지만 몇 억년 후 우주문명의 미래라 하니 받아들여지는 면도 없지않아 있으니깐.
“ 시민권 발급이 있어서 ... 좀 흔한 건 곤란하거든요 ... “
시민권? 진짜라는 듯이 되물으며 물빠진 선지빛 눈이 깜박거렸다. 등판에 붙은 그가 헤드 옆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인간이라면 아마 귀가 있을 위치에 속닥거렸다. 정말? 제품 증명서 새로 떼준다는 게 아니야?
네. 시민권 맞아요. 여전히 상황을 못 받아들이는 그를 향해 조금 참견이 나왔다. 몇 십억년 이후라면서요.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아예 우리 동족이 우리를 생산하기도 한대요.
“ 그런 게임같은 세상이 된 지 그렇게 되었다고 ... ”
“ 그 사람들 말론 당연한 상식이래요. 배울 게 너무 많으니깐 유기체들은 두뇌 회로쪽에 기본 양식 칩을 넣어서 교육받는데, 거기에도 들어가있는 정보라나. “
“ 구인류 정보로 따지자면 유치원도 아니고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정보란거구나. “
맞아? 라고 재확인을 해달라며 재차 되물었다. 완전히 맞아요. 라고 다시 확인하자 그는 그렇구나 ... 하고 말을 흐렸다.
“ 선지색 머리 여성분. 이제 상황 설명은 다 되셨을까요? “
“ 응. 대충.
상대가 자리를 그의 뒤쪽으로 옮기자 상판 위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술 도구나 정비 도구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뻘한 생각으로 생존자가 렌즈로 훑었다. 상판 침대의 구석진 곳에 스카치 테이프로 꾹꾹 눌러붙인 종잇조각 하나가 있었다. 이 실험체의 정보를 표기하려는 듯 , 절대 떨어지면 안된다는 듯 그건 투명 테이프가 밀푀유마냥 겹겹이 쌓여져 있었다. 석유 부산물 밀푀유. 별로 시식하고싶진 않아지는데. 종잇조각은 다음과 같이 구인류의 언어를 표기하고 있었다.
[ Adora ]
“...아도라.”
상대는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맞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 아드레날린에서 따서 아도라. 와. 진짜 공돌이같은 센스지? 뭐. 일정 이상 고지능을 가지게 된다면 일련번호로 불리는 것도 스트레스 겸 인조생명 침해라고 내가 제작될 시적 사람들이 말했으니깐. “
그는 아드레날린을 발음할 때 살짝 바람을 불어넣으며 “ 아도레(라)날린 “ 처럼 발음했다. 인간들이라면 혀를 굴린다고 표현했겠지만, 그는 굳이 수 천가닥의 섬유조직으로 이뤄진 고성능 부위를 발음하는 데에 쓰기엔 아깝다 생각해 자기 나름대로의 발성법을 만들어냈다. 발음이 아주 약간 뭉개지긴 했지만 휴머노이드들 사이에서 소통하기엔 문제가 없었다 ... 라고 자신의 연구진들이 말했었다. 아도라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자신의 데이터 정리에 잠겨있던 아도라는, 문득 잠깐의 침묵에 고함을 쳤다. 정리중이던 데이터 중에 화낼만한 게 있었다. 아도라가 꽤 성질머리있는 인공지능이었다면 이렇게 바로 말했을 것이다. 야, 그러고보니 이 깡통 조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말했냐?
“ 그리고 물빠진 선지가 아니라 복사색이거든. 복사꽃색!!! “
연구원들은 그닥 아도라의 말뽄새를 거칠게 만들진 못했다. 자신들에게 달린 투자자가 없진 않았으리라.
“ 복사색이 뭐...지요? “
“ 그런 기본적인 정보도 기억 못 해? 등에 그건 왜 짊어지고 다니는거야? “ 아도라가 자신의 머리를 집게손가락 모듈로 텅텅 건드렸다. 니 머리에는 든 게 없니? 라는 제스쳐였다. 정작 본인의 핵심적인 전뇌는 복부 부위에 분포됐었지만.
“ 검색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대략 20초 정도... “
그럼 검색 다 하고 나서 말해. 굳이 검색할까요? 라고 물어보지 말고.
“...퍽 다행이네. 나는 - 내가 없어질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버린 줄 알았어. “
- 나를 보자말자 물건을 집어던진 이유를 다시 설명해달라
- 여기에 왜 있었고 이때까지 여기에서 뭘 하고있었는지
- 죽기를 기다려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달라
생존자는 아직 그에게 정의내리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자신을 보자마자 적대하게 된 이유는 대충 추리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정리된 말로 다시 한번 아도라 자신의 입으로 정리된 걸 들어야 한다 판단했으며, - 이 시점까지 딱히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아도라가 자신보다 고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위해서였다 - , 아도라가 이 실험실에 왜 존재하고 있고 여기에서 이때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죽기를 기다려왔다고 한 게 무슨 뜻인지까지.
아도라는 이미 생존자에게 유감이 없었는지, 딱히 걸리는 부분 없이 로봇마냥 설명을 읊었다. 생존자를 보자마자 적대하게 된 이유는 그 스스로가 추리한 것과 같았다. 앞서 말했듯이, 태양이 지구를 삼키기 전까지 대략 서나흘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고, 아도라 역시 그와 같은 계산을 했으며 서나흘 후에 태양이 지구를 집어삼킨다는 걸 그와 같이 계산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딱히 발견될 일 없을 것 같던 쉘터의 밀실이 깨졌고, 그 역시 지금 지구상에 남아있는 지성체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생존자를 외계인이라 판단했다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산이 틀렸거나 외부의 빔 무기 같은 걸 맞아버린 지구가 생각보다 빨리 멸망해 산산조각 났고, 자신이 있는 쉘터는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던 걸 외계인-생존자- 가 발견한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가버렸다 했다. 생존자는 자신에게 작문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모듈이 있다면 지금 이 이야기로 착각으로 시작하는 클리셰물의 걸작을 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분명 헛생각이지만. 두 번째로 아도라 그가 이 실험실에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는 여기에 딱히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럼 너는 내가 여기에 왜 존재한다 생각해?” 대신에 퀴즈처럼 이 질문을 풀어나가려 했지만, 아도라가 묻자말자 생존자는 고개를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 헛기침을 하덧이 그의 화면이 깜박거리다가, 음성모듈이 멀쩡한데도 굳이 화면에 글자를 출력했다. 아도라는 쑥쓰러운건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 출력문을 읽었다. [ 제 추상화 회로는 그걸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지 않습니다. ] 아아, 저런. 미안. 내가 실험체라는 걸 깜박했어. 아도라는 탄식하며 그냥 설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곤 아도라는 아까 자신이 침대 위에 흩어놓은 물품 - 지금 보니 그건 연필꽂이였다. - 들을 뒤적이다 칼 하나를 꺼냈다. 커터칼이었고, 이미 다 녹슬어 겉에서 부슬부슬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제 그건 무언가의 철광석으로써 자연에 환원될 것 같았다. 뭐. 돌로 긁는 거나 칼날로 긁는 거나 상관없지만. 그렇게 중얼거리곤 아도라는 자신의 볼에 칼날을 북 긁었다. 바로 실리콘이 반으로 갈라지며 금이 갔고, 얼굴을 구성하는 철골들이 그 사이로 들여다보였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판단은 생존자 자신도 가지고 있었지만, 무심코 그가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당황해하며 반사적으로 자리를 들썩거렸다.
눈꺼풀 바로 아래까지 갈라진 실리콘 외피는 아래로 수많은 반사광들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번졌다 사라졌다. 그의 복사빛 눈 안 공동에 불꽃놀이처럼 섬광이 터지며 들어찼다. 아도라의 볼 아래 있는 신경장치들과 메모리들은 그 좁은 공간에 얼마나 자신들이 조밀하고 완벽한 기계문명의 산물인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게 꼴보기 싫었는지, 아니면 단지 쇼의 일부분이라 여겼는지- 아도라가 칼날을 다시 상판에 내려놓자, 그 금속음을 기점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실리콘외피가 천천히 늘어지기 시작했다. 금이 쩍 갈라진 부위에 늘어져서 덮었다가. 다시 스스로 엉겨붙었다. 슬라임이 생각나는 회복단계였지만, 그것보다 몇 배는 빠른 과정이었다. 실제 보통 인간의 눈이었다면 아도라의 실리콘 조직이 칼로 긁었음에도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인식했을 터였다.
-이후 플롯정리-
멸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아도라는 대충 인류의 유산을 집약한 안드로이드
죽기를 기다려왔단 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짐작했고 자신의 가치가 오래된 골동품정도란걸 깨달았기때문
여기에서 생존자가 말한 그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너도 어차피 비슷한 운명이 될 거라면서, 제대로 마련해주겠다는 시민권이나 일자리도 별 반 다를 바 없을 곳일거라말함.
자신을 이루고있는 신소재는 자가회복능력을 지니고있어서 아무리 썰리고 상처입어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고말함
이게싫어.
이미 실험꾼들이 자기한테 한 걸 알기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것 대신에 그냥 조용하게 지구가 태양에게 삼켜지길 기다렸던거
1. 내가 없어질 방법은 태양이 지구를 삼키는 것 뿐
2. 어차피 나는 인류의 유산으로 남겨졌는데 이제 인류는 젅부 지구를 떠났고 이제 인류라는 말도 남아있지 않을것이니 이 별과 같이 유명을 달리하는게 맞음 이것은 어쩌면 내 생에 정해진 자연사의 시기라고 생각함 단명 유기체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때 받아들이듯이 나도 그냥 그럴뿐임
3. 외우주로 생존자와 같이 가더라도 별로 좋은 미래가 있을 것 같지 않고 경매장을 전전하는 비싼 골동품이 될 뿐이라며 자조함
아도존자
그렇다면 저 .. 하나 부탁이 있는데...
혹시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을 낭독해주실 수 있나요...?
혹시 감상을 해보고 싶으시거나 직접 분석해보시고 싶으시다면 데이터를 보내드릴게요 - 바로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도란은 [ 당신 마음대로 soso ] 라는 대답을 보냈다.
외우주의 지성체는 친절하게도 도란에게 어느 출판사의 버전이며,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라는 설명도 보충해주었다.